그리운 시절의 사람을 찾습니다.

2007. 8. 19. 17:59실없는 농담들

옛 추억을 떠올려 이야기 하나 해볼려고 한다. 비록 다른 사람이 볼땐 유치찬란한 그저 그런 해프닝 같은 첫사랑 이야기겠지만... -_-a 음... 요즘 같이 초고속 인터넷이 많이 보급된 지금은 느껴볼 수 없는 느낌이겠지만 한 90년대 초중반 만하더라도 통신을 하려면 모뎀이라는 장비를 컴퓨터에 설치를 해야 PC통신을 할수가 있었다. 모뎀에서 접속되는 신호음이 가끔 그리울때가 있다. 당시엔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유니텔 같은 유료 통신서비스도 있겠지만  개인이나 지역 단체에서 운영을 했던 사설BBS 라는 통신망도 꾀 많이들 접속을 했었다. 서비스 이용료는 무료이지만 전화 접속료는 일반 전화 통화료와 같았기 때문에 오래 접속해 있으면 그만큼 많은 전화비를 감수해야만 했었다. 아마 최고로 많이 나왔던 전화비가  40만원 가까이 나와서 아버지,어무이한테 신나게 두들겨 맞았던 때가 생각이 나는군. 전화선 마저 가위로 싹뚝 잘랐던.... -_-a

뭐 이런 구시대적인 얘기를 왜 하냐면 그때 참 많이도 순수했었던 나에게 아주 작았지만 관심을 주었던 한 사람이 생각이나서다. 사설BBS 특성상 밤 10시 이후로 접속이 많았을때 갑자기 대화방에서 초대가 오는 것이다. 이름이 강명옥이라고 떠있다. 대화실에 들어가니 대뜸 "신문에 나오셨던 분 맞으시죠? " 이렇게 묻는다. 사실 그때 지역단체 사설BBS 에서 잠깐 BBS 관리로 작은 봉급이였지만 1년가까이 근무를 했었었다. 그때 잠시 지역 신문에 메스컴을 타게 됐었는데 아마도 그걸 본 모양이다. 그렇게 몇십분간 대화를 하고 나니 얘기가 잘 통하는 것 갈다. 나보다 4살이나 많은 여자지만 무척이나 성격이 활달하게 느껴져서 그녀에게 왈가닥이라는 애칭까지 부르며 서로 가까워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밤만 되면 누가 되었건 대화방을 열어서 우린 몇시간이고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대화방에서 살다시피 나와 그녀는 농담섞인 말, 속에 있는 말 없는 말 다 털어놓는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우린 같은 부산 지역에 살면서도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아니 내가 거부했다고 해야 되는게 맞겠군. 그때만 해도 난 일 때문이 아닌 이상 사람들을 만나는것에 막연하게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를 집으로 오라고 할수가 없었다. 그것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지만 몸이 참 많이 좋지 않았던 난 괜히 이런꼴로 그녀를 대하면 실망이 클텐데라는 쓸모없는 생각들이 꽉 차여 있어서 그렇게 할수가 없었다. 어쩌면 아주 조금은 첫사랑의 감정을 그때나마 느꼈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녀 또한 혼자 였으니까 말이다. 조금씩 조금씩 그런 감정들이 풍선이 부풀듯 부풀어 올때쯤.... 어느날인가 갑자기 내 집주소를 물어보는 그녀. 선물 하나 보내주겠다는 그녀에게 주소를 알려주곤 갑지기 몇일 뒤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는 얘길 하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은것 같은 기분과 마음 속에 있는 말도 아직 해보지도 못했단 아쉬움의 눈물이 흐르더군. 그날밤은 밤새 이불속에서 조용히 눈물만 계속해서 흘러내리게 되더군.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였는데 그동안 좋은 친구가 되어줘서 좋은 동생이 되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마지막 대화방을 나가는 그녀의 이름을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몇일뒤 집으로 소포가 하나 왔다. 보낸 사람의 주소도 없이 강명옥이라는 이름만 적혀져 있는.... 소포를 뜯어보니 시집 한권이 나왔다. 서정윤의 "홀로서기" 라는 시집이였다. 첫장을 넘기니 몇줄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이 시집의 재목처럼 홀로서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줘.
훗날에 다시 보게 되면 웃는 얼굴로 만났으면 해.... 그게 언제가 되든....
- 왈가닥..."

6개월이란 짧은 시간, 잠시 좋은 감정으로 많은 얘기를 나눴던 한 사람이였다, 그 시집은 오래전에 잃어버렸지만 아직 내 기억속엔 그녀의 이름 세글자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찌 보면 그때의 그 첫사랑의 감정 탓 때문에 지금까지도 계속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짝사랑 밖에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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